섬마을 의사로 인생 2막 … 마음의 빚 갚아야죠
[중앙일보] 입력 2013.09.18 00:22 / 수정 2013.09.18 00:22
70세 정우남 ‘행복의원’원장
미국서 30여 년 청진기 들다
은퇴 귀국 후 재능나눔의 삶
부인은 ‘준 원어민 교사’역
30여 년 미국 의사 생활을 접고 전남의 작은 섬마을로 온 ‘행복의원’ 정우남 원장(오른쪽)이 부인 박성자씨, 섬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 섰다. 소아과 전문의인 정 원장은 “친손자 셋 말고 수많은 손주들이 생겼다”며 웃었다. [프리랜서 오종찬]
아이 진료비로 달랑 500원만 내고 가기가 미안해서였을까. 섬 주민들은 의사에게 수시로 고구마·호박·가지 같은 농산물을 건넸다. 떡을 해오는 주민도, 치료를 받고 난 뒤 갯벌에 나가 조개와 바지락을 캐서 들고 온 아이도 있었다. 퇴근해 식사하는 중에 집 초인종이 울리기도 한다. ‘혹시 급한 환자가 생겼나’하는 생각에 뛰어나가 보면 주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우럭 같은 생선을 들이밀곤 했다. “거시기, 머시냐, 시방(지금 막) 잡은 싱싱헌 것이구만요. 선상님 맛 좀 보시라구….”
의사는 말했다. “고구마든 생선이든 받기가 참 미안합니다만, 정을 담아 주는 걸 거절하기는 더 미안해서 받습니다.”
소아과 전문의 정우남(70)씨. 그는 전남 완도에서 1시간을 가야하는 섬 노화도 보건지소에서 일한다. 공식 직함은 ‘행복의원’ 원장이다. 2011년 10월 이 섬마을에 들어 와 어린이들 건강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40년 전인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가정의학과·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을 딴 뒤 텍사스주 휴스턴 등지에서 병원을 운영했다.
2005년 62세에 은퇴를 했다. 평소 품고 다니던 “아픈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미국 병원은 역시 소아과 전문의인 장남에게 물려줬다.
그렇게 ‘나누는 삶’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처음 6년은 조선족이 많이 다니는 중국 옌볜(延邊) 과기대 의무실장으로 일했다. 임기를 마칠 즈음 전라남도가 낙도에서 일할 은퇴 의사를 찾는데, 지원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건은 월 급여 200만원과 숙소 제공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의술을 한국에서 배웠는데도 한국 환자를 돌보지 않았던 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게 빚을 갚을 기회가 주어진 거죠.”
진료비를 500원만 받는 ‘공공의료 서비스’란 점 또한 정 원장의 마음에 쏙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정 원장은 전남도가 실시한 의료서비스 ‘행복의원’의 1호 의사가 됐다. 그는 또 전남도에 사람이 사는 약 300개 섬에서 단 하나뿐인 소아과 전문의이기도 하다.
그가 부임한 노화도는 섬이지만 양식업이 발달해 인구가 많다. 인근 보길도·소안도까지 합치면 주민 1만여 명에 어린이는 1500여 명이다. 정 원장이 오기 전까지 아이들이 아프면 치료를 받기 위해 배를 타고 완도나 해남으로 나가야만 했다.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가 아플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그런 걱정거리는 정 원장이 오면서 사라졌다. 환자를 돌보는 방식도 남달랐다. 한 명을 놓고 20~30분씩 꼼꼼히 살핀다. 주민 황후남(36·여)씨는 “처음엔 무조건 ‘약만 지어 달라’ ‘후딱 주사 놔주지, 왜 이리 오래 보느냐’면서 역정을 내는 엄마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내 주민들은 그런 진료가 친손주 살피듯 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금까지 정 원장이 치료한 어린이가 연 2000여 명. 정 원장은 “친손자 셋 말고 수많은 손주들이 생긴 셈”이라며 웃었다.
정 원장의 부인 박성자씨 또한 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그는 ‘준 원어민 교사’ 역할을 한다. 토요일이면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교실에 나가고,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수업이 끝난 중학생들을 교회로 불러 영어를 가르친다. 전남도 배양자 보건복지국장은 “재능 나눔을 하는 정 원장님 부부야말로 아름다운 황혼의 주인공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표상”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오히려 내게 기쁨을 주는 섬 주민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공기 좋은 곳에 살면서 일하는 기쁨과 봉사의 보람까지 느낄 수 있으니 1석3조 아닙니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섬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주민과 아이들의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노화도=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